출처: 한국방송광고공사 - 광고연구
3. 음운론과 광고언어
정보화 시대의 광고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클러터링(cluttering)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하루 평균 수천 개의 광고물이 소비자의 주의와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정보처리 이론에 의하면(Peter & Olson, 1993) 사람의 주의(attention) 능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는 본질적으로 선택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택성의 원리에 따라 소비자들은 우선순위가 낮은 정보를 무시하게 되고 우선순위가 높은 정보에 집중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따라서 클러터링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의 광고는 일단 소비자의 주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본 장에서는 광고언어의 음운론적 특성을 이용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유발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두운, 모운, 각운의 음운론적 현상을 구체적인 광고사례 분석을 통하여 찾아보았다.
1) 두운(alliteration)
한 문장에서 두(혹은 그 이상의) 단어의 첫 번째 자음이 반복되고 있는 현상을 두운이라고 한다. 두운은 광고카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학적 기법이다. 국내의 광고카피에서 발견 되고 있는 두운의 사례들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두운이 슬로건과 브랜드네임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형
그 첫 번째 유형은 <사례 1>처럼 '케토톱'이라는 브랜드네임과 '캐내고'라는 슬로건 사이에서 'ㅋ' 자음이 반복되고 있는 유형이다. 이러한 종류의 두운 기법은 소비자의 주의를 환기시켜 궁극적으로는 '케토톱'이라는 브랜드네임에 대한 기억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실제 광고카피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례 1> 캐내고 싶다! 케토톱 (태평양 제약)
<사례 2> 랄랄라 라거 주세요 (OB 맥주)
<사례 3> 내가 나를 만든다, 나이스 화장품 (나이스 화장품)
특히 제품의 특성이 반영되고 있는 브랜드네임과 슬로건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두운은 더욱 강력한 기억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례 4>에서 '걸리버'라는 브랜드네임은 두운을 이용하여 '걸면 걸리는'이라는 슬로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전화가 잘 걸린다는 특성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사례 4> 걸면 걸리는 걸리버 (현대전자 휴대전화)
<사례 5> 물로 다리면 초보! 다리오로 다리면 프로! (다리오는 피죤 회사 제품명)
<사례 6> 이젠 자신있게 밖으로 ∼ 바크로비 (한독약품의 입술물집 치료제)
한편, 다음의 사례들은 특수한 경우의 두운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사례 7>은 'ㅂ'의 자음이 광고의 슬로건, 브랜드네임, 그리고 광고주 이름의 3차원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두운의 경우이며, <사례 8>은 국내의 광고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는 영어를 이용한 두운의 사례이다.
<사례 7> 열날 때는 부르세요, 부르펜 (부광약품)
<사례 8> Craving Cheil Communications (제일기획)
(2) 두운이 슬로건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유형
두운의 두 번째 유형은 두운이 브랜드네임과 상관없이 슬로건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종류의 두운도 많이 발견되었다.
<사례 9> 물 먹이지 마세요 (옥시)
<사례 10> 자녀사랑지킴이 종합보험 (동양화재 보험)
(3) 두운의 효과 증대를 위한 방법론
영어에는 20개의 자음이 있고, 한국말에도 17개의 자음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자음을 반복시켜도 두운의 효과는 동일한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자음의 반복으로 얻어지는 두운효과는 다음의 네 가지 경우에 더욱 강하다고 한다(Myers, 1994).
① 폐쇄음(영어의 p, b; t, d; k, g와 우리나라 말의 ㄱ, ㅋ; ㄷ, ㅌ; ㅂ, ㅍ)의 반복 경우
② 대구법의 구조에서 사용되는 경우
③ 스트레스가 있는 음절의 첫머리에 사용되는 경우
④ 반복되는 소리가 서로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경우
아래의 <사례 11> 한국이동통신 광고에서는 반복되는 소리가 의미상으로 반전되는 두운이 발견되고 있다. 먼저 '새장속?'이라는 속박의 세계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새장속? 외출은 해야겠는데 약속한 전화는 안 오고 어쩌다 악속장소가 어긋나면 연락이 막막하고 전화 옆에 붙어만 있을 수도 없고, 외출을 안할 수도 없고
……이러한 난감한 상황이 한국이동통신의 012 호출기에 의하여 '세상속!' 이라는 자유의 세계로 급속히 전환되는 의미의 반전을 통하여 두운의 효과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반전은 아래의 광고카피와 함께 광고 속의 여자모델이 환하게 웃으면서 화려한 외출복 차림으로 밖으로 나서는 비주얼을 통하여 더욱 강조되고 있다
세상속! 주부 여러분! 이제, 삐삐 Ol2와 함께 외출합시다! 언제 어디서나 연락 받을 수 있고, 호출한 사람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삐삐 Ol2. 주부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구요!
<사례 11> 새장속? 세상속! (한국이동통신 012)
위와 같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았을 때, 자음의 반복으로 얻어지는 두운효과는 광고카피의 기억증대를 위해 매우 긴요한 음운론적 기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로 끌 어다 만든 느낌을 주는 두운은 오히려 소비자의 반감을 자아내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She sells seashells"라는 문장에서처럼 너무 과다한 두운의 사용은 tongue twist라는 발음상의 문제점을 초래시킬 수 있다 (Myers, 1994). 아래의 <사례 12>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례 12> 세 가지 색깔, 세 가지 느낌, 새로워진 스매트 테이프 (SKC)
2) 모운(assonance)
두 단어에서 반복되는 소리가 모음일 때, 우리는 모운이라는 음운론적 기법을 발견하게 된다. 모운의 효과는 두운에 비하여 비교적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특히 모운은 악센트가 있는 음절의 모음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악센트가 비교적 불분명한 우리나라의 언어에서는 모운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하지만 모운의 사례도 우리나라의 광고 카피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사례 13> 아무도 닮지 않았다. 나는 나 (톰보이)
톰보이의 짧은 광고 슬로건에서는 '아'라는 양성모음이 5개의 단어에서 총7회 반복되고 있으며, 5개 단어의 첫머리에서 모두 반복되고 있다.
양성모음의 반복을 통하여 톰보이라는 남성적 여성 이미지에 걸맞는 매우 밝고 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모운은 주로 단어의 중간에 사용되고 있으며, 자음에 비해 발음이 비교적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들은 모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첫째는 모운을 톰보이의 경우처럼 단어의 첫머리에 사용함으로써 모운의 사용을 용이하게 발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례 14> Authority always anywhere (Time)
<사례 15> 아장 아장 아기장(腸)엔 누크-베비 (누크-베비라는 유아 정장영양제)
<사례 16> 아쉽지만 아홉 분께만 드립니다 ("아다바트'라는 골프웨어)
둘째, 모운을 주로 브랜드네임에 사용한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스프의 이름인 Super Noodles에서는 '우'발음이 반복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Coca-cola에서도 '오'발음과 '아'발음이 동시에 반복되어 제품명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콜라 제품인 콤비 콜라(해태)에서는 두운과 모운이 동시에 발견되고 있다.
셋째, 비교적 짧은 슬로건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줄 필요가 있는 정치캠페인에서 모운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 Eisenhower 대통령의 선거캠페인 슬로건인 "I like Ike"는 'i' 라는 모음을 짧은 슬로건에서 무려 세 번이나 반복시켜 'Ike'라는 Eisenhower대통령의 애칭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동시에 'Ike'와 'like'의 의미를 은연중에 연결시키고 있다.
위와 같은 모운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광고로는 아래의 <사례 17>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모음들이 거의 동어반복에 가까운 병렬구조로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광고는 이가 튼튼(탄탄)하기 위해서는 '이가탄'이라는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즉 제품의 성능을 브랜드네임으로 제시하고 있어 외우기 쉽게 만들고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4·3조의 장단에 맞는 언어적 구조를 지니고 있어 매우 친숙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례 17> 이가탄탄-이가탄 (명인제약)
3) 각운(rhyme)
마지막으로 각운은 두 단어의 마지막 음이 반복되는 언어학적 현상을 말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마지막 스트레스가 있는 음절부터 반복되는 경우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motion/lotion의 경우는 완전한 각운의 경우이며, motion/caution은 불완전한 각운의 경우에 해당된다. 각운은 미국의 1920년대 라디오 상업음악에서는 거의 필수적인 요소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미국의 광고 카피나 신문, 잡지 기사에서는 흔하게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언어에는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각운의 현상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가 통일되지 않고 있지만, 광고카피에서는 상상외로 많은 각운이 사용되고 있다.
<사례 18> 달릴때는 자유, 머무를때는 여유 (싼타모)
<사례 19> 엄마볼 아기볼 코코볼 (코코볼)
<사례 20> Sunday everyday Hyundai Say hyundai, like sunday (현대)
<사례 21> 고객이 OK할 때까지 OK! SK! (SK)
<사례 18>은 각운이 슬로건에서만 사용된 경우이며, <사례 19>는 각운이 슬로건과 브랜드네임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경우이다. 또한 <사례 20>은 현대의 해외 기업광고로서 기업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인 자신의 상호 "현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외국인을 위하여 각운의 묘미를 살려 발음 용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재치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사례 21>은 SK로 회사 이름을 바꾼 선경의 기업광고에서 발견되고 있는 자사의 영어 이니셜을 이용한 특수한 형태의 각운으로 볼 수 있다.
4) 음운론 효과에 대한 이론적 고찰
본 논문에서 소개된 두운, 모운, 각운의 음운론적 기법들은 모두 단어의 특정 요소를 반복함으로써 소비자의 주의와 관심을 짐중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심리학자 Zajonc에 의해 주장된 단순노출가설(mere exposure hypothesis)에 의하면, 단어의 반복노출은 반복된 단어에 대한 기억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호감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Zajonc, Swap, Harrison & Roberts. 1971). 한 고전적 연구는 반복효과가 심지어 잠재의식의 상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McConnell, Cutler & McNeil, 1958).
반복이 이처럼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반복된 대상에 대한 친밀도를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향상된 친밀도는 반복된 대상에 대한 호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Cialdini, 1985). 그러나 너무 많은 반복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반복효과에 대한 일반적인 가설은 반복횟수와 호감도 사이에 곡선적 관계(curvilinear relationship)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반복노출의 효과를 복합작용이론(two-factor theories)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대상에 대한 호감도는 익숙함(positive-habituation)이라는 요소와 싫증(tedium)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초기에는 반복에 의해 불확실성 감소효과를 가져오는 익숙함이 증가하게 되어 호감도가 상승하나, 일정 반복 이후에는 싫증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반복의 증가는 오히려 호감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두운, 모운, 각운 등의 음운론적 기법들도 남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편 광고언어의 음운론적 효과를 우리나라 언어만의 독특한 속성과 연결하여 분석하는 일은 매우 유용한 작업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앞서 <사례 17>에서의 경우처럼 음운론적 기법들의 효과는 4·3조 혹은 4·4조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사용해 왔던 장단의 언어구조에서 더욱 강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설정해 볼 수 있다. 논리에 따르면 아래의 두 가지 두운 사례들 중에서 <사례 22>가 4 ·4조 장단의 언어적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사례 23>보다 두운효과가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사례 22> 복이 많은 복지 복권 (주택은행)
<사례 23> 진실한 커뮤니케이션 진로소주 (진로소주)
이와 같은 광고언어의 운율학(prosody)적 분석은 우리나라의 언어구조에서 매우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적으로 한 경기 민요에서는 두운의 구조와 운율의 구조가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사례 24>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경기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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