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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고의 기호학: 그 한계에 대하여
광고의 기호학 분야에 길이 남을 명저인 Williamson(1978)의 Decoding Advertisements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박정순(1998)이 지적했듯이, Williamson(1978)은 이 저서에서 기호학적 텍스트 분석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그는 단지 기호들의 의미작용 방식을 설명 / 예증하기 위한 안성맞춤의 도구로서 광고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가 분석의 대상으로 광고를 선택한 것은 현대 소비사회 혹은 소비자문화에서 광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핵심적 /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기능을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기호학은 이처럼 텍스트의 기호체계와 문화 및 현실(즉 우리가 흔히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컨텍스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에 치열하게 파고드는 학문이다. 그 과정에서 기호학은 의미라는 것이 기호들 사이에 존재하는 (만들어진) 차이와 상호작용(interplay)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예전에는 쉽게 간과되던 “의미의 상대성”이라든가 “문화적 특수성” 같은 것들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광고학과 소비자 연구 분야의 실증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적 접근방법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기호학은 그 많은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 우선 기호학은 너무 이론적이고 지나치게 추론적이며 연구자가 자신의 이론을 객관적 / 과학적인 방식으로 입증하려 들지 않고 자신의 이론을 지지 / 예증하는데 사용하는 증거들이 매우 선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어 싫증주의적 / 경험주의적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기호학자가 제시한 특정 텍스트의 해독이 지극히 주관적이며 특이한 해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십상인데 이러한 비판은 상당부분 타당한 일면이 있다. 실제로 기호학은 Barthes(1972)나 Berger(1972) 그리고 Williamson(1978, 1986) 같은 소수의 뛰어난 학자에게만 유용한 엘리트주의적 학문일 수 있다. 광고 텍스트에서 함축적 / 심층적 의미(connotation)의 생산이란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일반 수용자들은 읽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계적인 미디어 교육이나 기호학적 해독의 훈련을 받지 않은 수용자들은 텍스트의 외연적 / 표피적 의미(denotation)만 인상주의적 비평으로 읽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상주의적 비평조차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실증주의 연구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기호학적 텍스트 분석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통계학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일반화의 가능성(reliability / generalizability)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기호학은 그 분석대상의 선정에 있어 매우 선택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기호학자들은 통계학에서 얘기하는 무작위 표본 추출(random sampling) 등을 통해서 선택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이나 주장을 예증하기 위해 증거를 선택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 / 정당화하는 자족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Williamson(1978, 1986)의 경우도 화장품을 비롯한 기호품이라든가 소매업 분야의 전국적 브랜드(national brand) 중심의 언뜻 보기에도 흥미로운 광고의 분석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학부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에 의하면 광고의 기호학적 분석을 단지 광고에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는 성에 관한 이데올로기 비평으로 환원시키는 학생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 광고의 기호학적 분석이 이룬 학문적 성과 중에 성에 관한 이데올로기 비평이 유독 비정상적(?)으로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광고의 기호학적 분석에서는 기호학적 체계와 사회적 / 문화적 맥락 또는 구조 사이의 괴리를 간과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예를 들면 최근 눈에 많이 띄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광고들의 경우 텍스트 상의 성적 해방이 현실 세계에서의 성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단지 상업적 목적으로 동원된 것(이른바 “commodity feminism”) 임을 알 수 있는데, 일부 기호학적 연구는 페미니즘적인 텍스트 자체의 분석에만 함몰되어 소위 “기호학적 민주주의(semiotic democracy)”가 “사회적 민주주의(social democracy)”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흔히 “광고의 신화”, “광고 읽기”, “광고 문화비평”, 또는 “광고의 기호학” 등의 이름으로 수행되어 온 광고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들이 갖고 있는 한계는 분명하다. 즉 기호학은 위에서 밝혔듯이 텍스트의 기호체계와 사회적 / 문화적 맥락(context) 사이의 구조적 관계에 치열하게 파고드는 학문임을 표방해 왔지만 저간의 광고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는 대부분 텍스트 비평을 위한 텍스트 비평, 즉 텍스트를 독립적인 별개의 분석의 단위로 파악하고 그 텍스트가 생산 / 유통 / 소비되는 구체적인 사회적 / 문화적 / 역사적 / 경제적 / 정치적 맥락과 조건은 무시하는 비평에 그쳐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결정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위에서 소개한 현대 사회에서 광고가 갖는 함의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Raymond Williams(1980)의 날카로운 통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Williams(1980)는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사실들 사이에 얽혀있는 관계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분석(total analysis) 방법을 개발해야만 광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Williams는 광고를 단순히 경제 제도나 마케팅 도구 또는 하나의 설득 커뮤니케이션 형식이나 심지어 문화적 텍스트로 축소시킬 수 없음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Williams 이후 광고를 이해하려는 어떠한 엄격한 학문적 시도도 반드시 광고가 문화 / 사회 / 경제의 층위가 융합되는 지점의 한가운데에 존재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면, Mort(1996)가 지적했듯이 광고주들은 단순히 자본과 이익의 노예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시장과 소비자 문화 사이에서 일종의 대화 기능(dialogic function)을 수행한다. 그들의 광고 행위가 시장에서 경제적 힘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에도(예를 들어 시장진입 장벽으로서) 동시에 그것은 문화적 /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소비에 관한 중심적 내러티브로서 광고는 소비의 문화적 이미지를 투사하며 이러한 문화적 이미지는 대중의 기억과 상상력 속에 깊이 각인된다. 광고는 또한 삶의 방식과 정체성의 문제를 소비의 문제로 압축시켜 소비를 권력과 즐거움의 원천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광고를 통합적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는 Williams(1980)의 혜안은 소위 광고 연구와 소비자 연구 분야의 실증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적 접근방법 - 즉 텍스트 분석(textual analysis)과 해석적 소비자 연구(interpretive consumer research) - 의 한계를 새삼 인식케 해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소비자 행동과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는 소비를 문화적 텍스트의 한 형식(consumption as a cultural text)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점차 늘어났다(Hirschman, 1989 ; Mick, 1986 ; Sherry, 1987 ; Hirschman & Holbrook 1992). 비록 McCracken(1990)은 문화와 소비의 접합관계를 파고들려는 해석적 소비자 연구의 시도를 높이 평가했지만 이 접근방법의 심각한 문제점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광고 연구와 소비자 연구 분야의 텍스트 분석과 해석적 소비자 연구가 다른 학문 분야로부터 전용하는 이론이나 개념 그리고 방법론들은 그 범위 면에서 매우 한정되어 있다. 물론 이 두 분야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상당히 다양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표면상의 이론적 / 방법론적 다원주의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경우 구조주의 언어학 또는 기호학 그리고 텍스트 분석을 최우선시하는 그들의 연구성향이 이 분야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따라서 구조주의 언어학 또는 기호학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문화 인류학이나 사회학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적 틀에 대한 이해나 활용은 매우 부분적이며 모호하고 피상적이다. 1980년대 이후 이 분야의 대표적 저널인 Journal of Consumer Research나 Advances in Consumer Research를 일별해 보면 기호학이나 구조주의 문학비평이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텍스트 중심주의는 그러나 McCracken(1990)의 평가와는 달리 소비행위의 의미를 더 넓은 문화의 맥락과 접합시켜 읽어내는데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 소비를 문화적 의미를 단번에 읽어낼 수 있는 투명한 텍스트로 환원시키는 시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해석적 소비자 연구는 다른 학문 분야에서 빌려 온 개념이나 방법론을 아무런 비판적 성찰없이 쉽게 가져다 쓰고 있다. Belk(1995)는 해석적 소비자 연구가 사회학적 / 인류학적 지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거시적인 시각에서 질적(qualitative) 이고 민속학적인(ethnographic)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학이나 인류학의 질적 / 민속학적 방법론이 학문적 경계를 넘어 소비자 연구에 전용되는 경우, 매우 간략한 버전의 질적 / 민속학적 방법론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데 있다. 게다가 Belk(1995)가 주창하는 “신 소비자 행동론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of the new consumer behavior research)” 는 불행히도 영국 문화연구에서 비롯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아니라 전통적 의미의 비교문화 연구(cross - cultural studies) 이다. 레이블만 하이재킹 한다고 해서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의 연구가 하루아침에 문화연구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해석적 소비자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역사(intellectual history)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해석적 소비자 연구를 과도하게 지배해 온 텍스트 중심적 경향의 극복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타 학문 분야에서 빌려 온 개념과 방법론의 자의적 사용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틀과 방법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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